멕시코 화폐에 담긴 한편의 드라마

멕시코 페소화

멕시코 페소화에는 특별한 부부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 운동가이자 국민 화가 부부다. 특히 프리다 칼로는 20세기 멕시코 현대 예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자부심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다.

얼마 전, 멕시코에 새로 부임한 미(美) 대사가 프리다 칼로의 공산주의 지지 이력을 비판해 멕시코 국민들이 크게 분노한 사건이 있었다. 실제로 레닌-스탈린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인 멕시코에서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멕시코 혁명

멕시코는 외세의 침략과 오랜 내정간섭으로 유럽계 소수 백인들이 토지의 97%를 차지하는 등 극심한 차별과 빈부격차에 시달렸다. 결국 1910년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면서 10년간의 내전 끝에 혁명 정부가 설립되었다. 새 정부는 ▲유럽식 건축물의 흔적을 지우고 ▲문맹률이 80%가 넘는 국민들을 교육하고자 했으며, ▲멕시코 전통문화를 되살리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시대를 타고난 부부

글을 읽지 못하니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 그림은 유럽식 건축물의 흔적을 지우는 데도 사용되었다. 바로 벽화다. 벽화 화가였던 디에고는 당시 혁명 정부의 요구를 수정이나 반발 없이 그대로 구현해 주면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프리다는 디에고가 좋아하는 멕시코 인디언의 전통 의상과 장신구로 항상 몸을 치장했는데, 이 모습이 전통문화로의 회귀를 외치는 당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부부는 살아생전 칸딘스키, 피카소 등 거장들과도 교류했던 *세계적인 화가였다. 근로자의 권익 향상과 인도주의를 외치는 정치 활동까지 활발했다. 세계적인 명성과 정치 활동으로 국가의 자부심이 된 이 부부가 레닌-스탈린 주의 이념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멕시코 국민들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프리다 칼로는 루브르에 입성한 최초의 중남미 여성 화가였으며,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멕시코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라 불리기도 한다.

사생활은 글쎄

그러나 예술적 영감과 정치 이념을 공유한 이 부부의 사생활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6세에 소아마비를 앓고 18세에 경전철 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는 “인생에서 두 가지 큰 사고를 당했는데, 하나는 경전철 사고이며 두 번째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디에고 리베라는 40년 바람둥이 외길 인생을 걸었다. 두 번째 부인은 첫 번째 부인의 친구로, 불륜 관계로 시작되었으며, 세번째 부인이 프리다 칼로로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생활 중 만났다. 심지어 프리다와의 결혼 생활 중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영어 선생님, 조수, 모델 등 염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프리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일본의 조각사 이사무 노구치를 시작으로 러시아 혁명의 전설이라고 불리던 레온 트로츠키(디에고가 특히 존경했던 인물), 당대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사진작가인 니콜라스 머레이까지 그 이력이 만만찮게 화려했다.

그들이 사랑하는 법

하지만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그 둘의 사랑은 생각보다 깊었던 듯하다. 불륜 사실을 알자마자 이사무 노구치에게 총을 들고 찾아가 헤어지라고 협박했던 디에고, 디에고를 차별했다며 사귀고 있던 레온 트로츠키와 헤어진 프리다, 결국 그 둘의 사랑에 본인은 낄 수 없을 것 같다며 스스로 떠난 니콜라스 머레이까지.

서로의 연인 문제로 이혼까지 했었지만, 둘은 다시 만났다. 프리다 칼로의 병세가 심각해졌을 때 디에고는 병원비를 대기 위해 하루에 두 점씩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프리다가 고통이 잠재워질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다. 프리다 칼로의 임종을 지킨 것도 디에고였는데, 프리다가 죽고 화장터에서 시신이 나오자 슬픔에 잠긴 디에고는 그 재를 그러모아 삼켰다고 한다.

부부의 인연

혹자는 말한다. 프리다의 그림들은 사고 후유증과 유산의 아픔, 디에고로부터 받은 상처 등 일생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것으로, 디에고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실제로 프리다의 작품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것도 디에고였다.) 디에고 또한 프리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수많은 걸작을 후대에 남겼다. 이처럼 인생의 동반자이자 애증의 연인이었던 그 둘은 어쩌면 다음 생애에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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