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의 배신

우리가 알고 있는 마지노선

마지노선(Maginot Line)은 최후의 보루라는 뜻이다. 환율이나 물가와 같은 지표부터 심리·물리적인 범위까지 두루 사용된다. 원래 마지노선은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슷한 최전선 방어벽으로, 1927년 당시 건설을 주도한 프랑스의 국방장관 안드레 마지노(Andre Maginot)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생겨나게 된 이유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한 세대의 반이 사라지다시피 한 참극을 겪은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공격 제일주의를 내려놓고 자국의 병사 보호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프랑스는 육지 국경을 따라 그 누구도 뚫지 못할 방어벽을 만들기로 한다. 암반을 뚫어 만든 거대한 요새들을 지하로 연결해, 어지간한 포격이나 폭격은 견뎌내면서 원거리 적까지 공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육지 국경은 750km에 달했고, 당시 경제 대공황과 정치적 불안을 겪던 상황에서 프랑스는 마지노선 축조 비용에 큰 부담을 느꼈다. 결국 1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과의 국경 지역은 10년에 걸쳐 350km 길이의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동맹국이었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국경은 간단한 방어선 정도에 그쳤다.

*규모: 142개의 요새, 352개의 포대, 5,000여 개의 벙커

마지노선의 배신

마지노선은 당시 화폐 가치로 한화 약 20조 원을 쏟아부어 만든 군사 시설로, 전력과 급수, 배수, 통신 등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곳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이 섣불리 프랑스를 공격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마지노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피해 없이 독일군을 물리쳐야 했을 이 마지노선은 오히려 독일군에 승리를 안겨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독·불 국경에 설치된 마지노선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독일군 입장에서도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작전이 바로 독일 장군 프리츠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이다. 상대적으로 방어선이 약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돌파해 마지노선을 안에서 밖으로 돌파하는 작전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마지노선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함락당한다.

앉은뱅이 전쟁? 가짜 전쟁?

당연히 프랑스도 마지노선이 약한 벨기에에 군사를 집중시켰다. 그러나 ▲독일의 *기갑부대가 평지가 아닌 고원지대로 올 거라 생각지 못한 점, ▲고정된 진지를 지키느라 앞에서 연합군이 당해도 도우러 가지 못한 점이 패인으로 꼽힌다. 결국, 80만 대군이 마지노선에 앉아 싸움을 구경하다 당한 꼴이 되었다. 당시 독일도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쉬운 승리에 놀랐다고 한다. 이를 냉소적으로 앉은뱅이 전쟁 또는 가짜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동성과 화력을 장점으로 한 육지 부대

진짜 마지노선의 의미

마지노선 함락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지노선이 함락당했던 당시, 프랑스 북부의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연합군을 영국으로 철수시키기 위한 일명 다이나모 작전이 있었다. 덩케르크의 작은 배라 불렸던 일반 어선부터 요트, 유람선 등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감동적인 스토리와 윈스턴 처칠의 “We shall never surrender”라는 유명한 어록이 탄생했지만, 그 이면에는 독일 기갑 부대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벨기에의 항복과 초반의 선전으로 독일군은 기갑 부대에 휴식을 주었고, 공군부대와 보병부대에게 덩케르크를 맡겼다. 당시 독일 기갑 부대의 휴식 시간과 다이나모 작전의 시간이 겹쳤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마지노선의 진정한 의미는 어쩌면 최후의 보루가 아닌 단순히 비싼 상징에 지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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