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흥망성쇠의 역사

새 주인 찾는 아시아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시아나항공이 새 주인을 찾는다. 몸값만 1조 원을 훌쩍 넘다 보니, 웬만한 대기업 아니고서는 명함도 못 내밀 규모다. 그런데 대기업들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아시아나 어깨너머로 보이는 7조 원의 빚 때문이다. 한때 대한항공 독점을 견제하는 유일한 항공사였던 아시아나항공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8년~] 제 2의 민항사

1946년 나주에서 택시 2대로 시작해, 금호타이어와 금호석유화학까지 사업을 확장하던 금호그룹은, 1988년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글로벌 관광수요의 급증과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제2의 민항사로 채택된 것이다. 한진그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유일 항공사로서 시장을 독점해 온 지 19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전두한 전 대통령이 퇴임 하루 전 인가를 해주면서 뒷말이 많았지만,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빠르게 안정시켜갔다. 항공기 추락 사고와 IMF의 위기에도, 구조조정 대신 1년 안식 휴가제(무급)를 도입하고 과감하게 노선과 항공기를 단축하는 등 모범적인 위기 대처 사례를 남기며 굳건히 성장했다.

[2002년~] 보아뱀 전략

그러다 2002년, 금호그룹은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1991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이끌며 굵직한 성과를 보여준 창업주의 3남 박삼구 전 회장이 취임한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금호그룹은 기세를 몰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 아래 *보아뱀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는 전략

2006년 11월,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원래 가격보다 2조 원을 더 얹은 6조 4천억 원에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3조 5천억 원을 빌렸는데, 이때 투자자들과 체결한 *풋백옵션이 후에 족쇄가 되었다.) 그로부터 16개월 후, 4조 1천억 원을 주고 대한통운을 추가로 인수하면서 금호그룹은 순식간에 재계 순위 7위에 올라선다.

*풋백옵션: 일정 시점에 주가가 약속한 금액보다 떨어지면 그 차액을 보전해 되사주는 일종의 보증계약 (대우건설: 2009년 12월 15일/ 주가 32,513원 기준)

[2008년~] 승자의 저주

하지만 이내 주택시장 위축으로 반 토막 난 대우건설의 영업이익과, 추락하는 주가, 때마침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호그룹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다. 풋백옵션 비용만 4조 2000억 원에 달하자, 이를 감당 못한 금호그룹은 2009년에 *대우건설을, 2011년에는 대한통운을 재매각하기에 이른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3년간 최소 1조 5천억 원의 손실 추정

이후에도 자금난이 계속되어 주요 계열사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에 돌입하자, 사람들은 *승자의 저주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평소 무리한 M&A에 반대하던 4남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석유화학 경영권을 강화하면서 금호그룹에 형제의 난이 발발한다. 2010년, 결국 금호그룹은 3남 박삼구 전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 4남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쪼개졌다.

*승자의 저주: 경쟁에서 이겼지만 경쟁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치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현상

[2013년~] 재건 시도와 위기

이후 박삼구 전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다시 인수하며 그룹 재건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현금 흐름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은 여전히 발목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자금을 대던 아시아나항공의 회계가 부실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아시아나 항공을 흔드는 풍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8년에는 여승무원 격려로 불거진 미투 논란에 기내식 공급 대란으로 타격을 입었고, 2019년 초에는 재무제표에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3일간 매매가 정지되기도 했다. 다행히 곧 ‘적정’으로 정정되어 거래가 정상화되었지만, 돌아오는 빚을 막지는 못했다.

[2019년~]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

여전히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올해 4월 25일, 600억 원짜리 채권이 만기 될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돈을 막지 못하면 1조 3,000억 원에 이르는 빚을 조기 상환해야 했다. *회사채를 발행해서 막으려 했으나, 경영 환경 악화를 우려한 채권단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채권단에게 자금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회사채: 주식회사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일정 기간 사채업자에게 채무를 부담하게 하며, 이자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약속된 기일에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앞으로의 전망

대표 계열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은, 그룹 자산의 60%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재계 순위 60위 권으로 하락한다는 걸 의미한다. 남는 건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금호리조트가 전부다. 다만 그동안 현금 흐름 부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그룹 역사를 고려하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금 7,500억 원은 기존 사업 정비 및 확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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