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제 2의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

한동안 베트남에 입국하는 모든 화물에 대해 평소보다 훨씬 엄격한 검사가 이루어졌다. 필자도 이 시기에 베트남을 방문했다가 짐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양국 정상의 회담이 지난 2월 27~28일에 걸쳐 베트남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왜 베트남에서 만났을까?

미국과 북한은 왜,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 베트남은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가파른 성장을 이루어낸 국가다. 일명 ‘도이머이(=renewal)’ 정책의 성공이었다. 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사이가 나빠졌던 미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고 성장을 위한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는 북한이 불법적인 도발과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미국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정은도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도이머이’정책의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 베트남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왜 중국이 아닌 베트남이 궁금했을까?

그렇다면 북한은 왜 중국이 아닌 베트남이 궁금했을까?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주의 지배 이념 아래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대표적 국가다. 개혁 초기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의 민심을 잡기 위해 농촌 개혁에 힘썼던 점,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 집중하고 개혁 과정에서 외국 자본(외자)을 끌어들였다는 점 등이 닮았다. 하지만 이 둘은 국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개혁 과정을 보였는데, 이 국가 상황의 차이가 바로 북한이 베트남을 눈여겨보는 이유다.

거대한 내수 규모와 화교, 지방 향촌의 재력을 바탕으로 국가 주도의 점진적인 개혁이 가능했던 중국과는 달리, 당시 베트남은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의 잇따른 실패로 절대 빈곤율이 50%가 훌쩍 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 대한 외자 투자가 교통 및 에너지와 같은 인프라 구축과 농업, 교육과 같은 기반 시설 구축에 초점이 맞춰 있었던 반면, 베트남은 IMF로부터 경제정책과 구조개혁에 대한 프로젝트까지 개입하는 말 그대로 포괄적인 지원을 받았다.

지금의 북한은?

지금 북한은 개혁 전 베트남과 많이 닮아 있다. 소수 국영기업을 밀기 위해 계획경제 체제 아래 국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국가 재정으로 메우고 있다. 국가 재정적자는 가속화되고 시중에는 지속적으로 돈이 풀리니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화폐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소수 정치가와 엘리트들을 위한 정책으로 생산성 반등에 실패하면서 물가 상승뿐 아니라 서민 경제 자체가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했다.

북한판 도이머이 가능성은?

중국처럼 내수 경제 규모가 크지 않고 기반 시설이나 자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은 외자뿐 아니라 베트남이 받았던 IMF의 ‘포괄적인 지원’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의 도이머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해 보인다. 국제 금융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조성한 자금인 점, 북한은 일당 독재가 아닌 혈연으로 세습되는 독재라는 점이 큰 장애물로 작용할 전망이다.

베트남은 IMF 지원을 받기 위해 전쟁으로 단절된 미국과의 국교를 다시 정상화했고, 중국도 외자유치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들였다. 하지만 북한은 핵, 불법 도발 등 미국과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어 빠른 관계 개선이 어렵다. 여기에 오랜 시간 침체된 경제로 내부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한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했을 때, 혈연으로 세습되는 독재 체제가 무너질 우려가 커, 북한 내부에서도 섣불리 도이머이를 시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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