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와 현대중공업이 손잡은 이유

Saudi Arabian Oil Compony. 줄여서 ARAMCO는 사우디 내에만 100여 개의 원전과 천연 가스전을 갖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다. 세계 최대 육상과 해저 유전을 갖고 있으며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5%를 차지한다.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이 원유 생산기업이 현대오일뱅크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국내 정유사 지분 매입

최근 아람코는 현대중공업 지주가 갖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의 91% 지분 중 최대 19.9%를 매입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1조 8천억 원의 규모로, 이제 언제든지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가 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 계약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데, 아람코가 이미 에쓰오일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쓰오일 지분의 64%를 갖고 있는 아람코는 2012년 에쓰오일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에쓰오일은 20년간 아람코의 원유만 수입해야 한다. 원유 부족 사태에 활로가 확보되는 장점도 있지만, 수입 채널 다변화가 어려워지면서 경영개입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한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왜 현대오일뱅크였을까?

아람코와 현대오일뱅크는 서로가 필요했다. 먼저 아람코는, 원유 생산국으로서 입지를 넓혀가는 *미국을 견제하여 아시아 시장 확보를 위한 거점이 필요했다. 여기에 국내 정유업계 빅 4 중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은 국내 미국 원유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반면,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는 대부분 사우디 원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대오일뱅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45년 만에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에 등극함.

또, 아시아는 전 세계 석유 소비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중국, 인도, 일본에 이어 4번째로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아시아 국가다. 1인당 석유 소비량은 세계 5위다. 아시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과 근접한 지리적 이점, 원유 가공에 대한 인프라 및 설비가 완비된 점에서 한국을 아시아 석유 시장의 거점으로 삼았을 것이라 분석된다.

왜 지분을 매각했을까?

현대오일뱅크의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은 돈이 필요했다. 차입금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슈 때문이다. 2014년 조선업 불황을 겪으며 한때 차입금이 9조 3,000억 원에 달했던 현대중공업은 작년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차입금을 6조 원 대까지 낮췄다. 현대오일뱅크 IPO(기업공개)로 2조 원을 추가 조달하고자 했으나,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태와 자회사인 현대쉘베이스오일의 회계 처리 문제가 지적되면서 여의치 않게 되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태: 분식회계(회계 조작)가 들통난 사건으로, 이로 인해 다른 회사들의 회계 감사가 강화됨

IPO가 계속해서 미뤄지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은 시가총액 7조 원에 달하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참여하게 된다. 산업은행과 합작회사를 만들어 자회사로 대우조선해양을 두기로 하지만, 3조 5,000억 원이 넘는 인수 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때마침 아람코에게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매각하고 2조 원 가까운 금액을 조달하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앞으로의 전망

국내 정유 빅4중 2개 업체의 대주주가 해외 석유 회사라는 사실에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이 매출의 70% 가까이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세계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신사업 진출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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