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167 하버드생이 폭탄을 만든 이유, 유나바머

사상 최악의 지명수배자

1996년 4월, 지명수배 17년 만에 한 테러리스트가 검거됐다. 미국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러야 했는데, 당시 FBI 역사상 돈이 가장 많이 들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16차례에 걸쳐 26명의 사상자를 낸 범인은 초기에 대학교와 항공사를 테러했다고 해서 University와 Air, Bomber를 합쳐 유나바머(UNAbomber)로 불렸다.

항공사에서 정비공 정도로 일하다가 해고당해 분노에 찬 저학력의 남성. FBI의 범인 프로파일링 결과였다. 하지만 유나바머는 이를 보기 좋게 뒤집는다. 백인 중산층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UC 버클리에서 최연소 조교수로 활동한 수재. 100만 달러 현상금이 걸렸던 실제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이력이다.

범행 동기

카진스키의 범행 동기는 명확하다. 바로 첨단 기술에 대한 저항이다. 이는 테러를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던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유나바머 매니페스토(성명)라고 불리는 이 기고문은 무려 35,000자에 걸쳐 첨단 기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언젠가 기술에 지배당하고 말 것이라며, 어차피 무너질 거 빨리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진스키가 이러한 성향을 갖게 된 이유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하버드 재학 시절 참여한 심리 실험이다. 법학도와 토론하는 동안 맥박과 호흡이 기록되고, 토론 후에는 영상을 돌려보며 스스로 논평하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역사학자 채이스는 법학도가 상대의 분노를 유발하고 좌절시키도록 훈련이 되어 있었다는 점, 기술을 이용한 압박 상황이 3년간 200시간 반복되었다는 점이 그의 극단적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네오 러다이트

기고문을 낸 이듬해 1996년 4월, 기고문에서 형의 문체를 알아본 동생의 제보로 카진스키는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유명 교수도 ‘그의 글에 설득당하게 되어 무섭다’라고 말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50장을 훌쩍 넘기는 기고문은 단 한 가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바로 ‘네오 러다이트’다. 네오 러다이트는 첨단 기술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모든 운동을 일컫는다.

러다이트가 19세기 초 실업률 문제로 영국 노동자들이 벌인 기계파괴 운동이라면, 네오 러다이트는 보다 광범위하게,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첨단 기술에 저항하는 가시적인 움직임이다. 카진스키는 이를 극단적으로 표출했지만, 구글에 대한 미국 오클랜드 주민의 적대감이나 최근 국내의 카풀과 택시업계의 갈등도 일종의 네오 러다이트라고 볼 수 있다.

테크포비아와 기술윤리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 속도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대의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한다. 적응할 새 없이 발전하는 기술에 사람들은 피로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바로 테크포비아(techphobia)다. 그 감정이 실제 움직임으로 나타날 때 ‘네오 러다이트’가 된다. 카진스키는 인간이 기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해서 쓸 수 없으며, 기술 효용에 중독되어 결국 기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들만 양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된 유전학 등 심심찮게 보이는 논란들은 실제로 사람이 발전하는 기술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에서 얻는 효용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발전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윤리가 정립되는 속도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의 부작용 가능성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