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와 '34조 원'의 광군제

미국, 보고 있나?

10년째 이어온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제의 거래액(알리바바 플랫폼)이 시작 2분 만에 100억 위안(약 1조 7천억 원)을 넘어섰다. 이후 폭발적인 기세로 24시간 동안 34조 7,000천억 원(YoY +26.9%)을 팔아 치웠다. 하나의 이벤트에서 조 단위를 벌어들이는 스케일이라니. 엄청난 스케일의 광군제를 치르면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한풀 꺾여 있던 중국의 소비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시작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가 먼저였을지 몰라도, 2018년 명실상부 세계 최대 쇼핑 시즌은 중국의 광군제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96억 달러) 매출은 이미 작년에 광군제(241억 달러)에 따라 잡혔는데, 놀라운 점은 블랙프라이데이는 5일 동안의 매출인 데 반해 광군제는 단 하루의 거래액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광군제가 중국 소비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글로벌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자평한다.

광군제는 무슨 날?

광군제는 ‘독신, 애인이 없는 사람’을 위한 날로(‘광군’은 중국어로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11월 11일에서 1의 모습이 외롭게 서 있는 사람과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군제는 1990년대 초반 중국 난징대학 학생들이 발렌타인 데이에 맞서 솔로들끼리 서로 위로해주자는 취지로 파티를 열고 선물을 교환한 데서 유래되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이 풍습이 퍼져 나가자, 알리바바에서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로 한 게 지금의 세계 최대 쇼핑 시즌의 시작이었다. 쇼핑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한다며 ‘마음껏 쇼핑하는 날’을 외치며 등장한 ‘광군제’는 알리바바 주최의 전야제가 하이라이트다. 커다란 전광판에 실시간 거래액을 띄우고 전 세계 유명인을 초대하여 화려한 볼거리와 화제성을 자랑한다. 올해에도 미란다 커, 머라이어 캐리, 와타나베 나오미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역대급 광군제가 가능했던 이유

하루 34조 원 돈이 오가는 수많은 거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실제로도 광군제의 성공 비결에는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 꼽히곤 한다. 주문이 시작되면 독자적인 클라우드 플랫폼이 초당 수십만 건의 거래와 결제를 처리하는데, 지난해에도 광군제 시즌에 초당 32만 5,000건의 거래를 처리하면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알리바바의 목표는 세계 어디서 어떤 상품을 구매하든 72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알리바바가 올해 중국판 배달의 민족 ‘’어러머’’를 인수하고 스타벅스와 커피 배달 서비스를 제휴한 것도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 모든 비즈니스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알리바바는 2분기 동안에만 빅데이터 분석, 보안, IoT 서비스 등에서 600개 이상의 제품과 기능을 출시하고 19개 국가에 52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면서 미래의 메인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광군제에 대한 우려의 시선

알리바바의 탄탄한 클라우드 시스템과 전 세계적인 참여로 광군제 10주년은 가히 역대급 기록을 남겼으나, 광군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34조 원의 거래액은 중국 중산층의 소비 저력을 확인한 계기가 된 반면, 일시적인 쏠림 현상으로 다른 기간의 소비가 줄어들 위험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할인행사 기간에 소비가 몰린 것은 가처분 소득(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 소비자들이 절약의 일환으로 참여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게다가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3분기 경제성장률이 6.5%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최저치다. 광군제의 34조 원이 무색하게도 중국 내의 소비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 증가율도 2분기부터 한 자릿수에 머무르면서 객관적인 경제지표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광군제의 신기록이 일시적인 소비 쏠림 현상일지, 긍정적인 여파가 중국의 침체까지 잡아줄 수 있을지는 연말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