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4년 만에 최고치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참고로 2015년에는 20달러 대였다. 무려 3배 가까이 뛴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과하게 하락한 감이 있었지만, 50달러 선이었던 작년 하반기와 비교했을 때도 무려 50% 이상 올랐다. 그렇다면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유가는 대체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국제유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지정학적 요인. 원유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니 결국 원유 생산량과 정치적 이슈가 유가를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고유가가 지속되는 현재 상황의 경우, 생산량은 안정적이고 수요가 위축되지도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고유가 상황이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시장의 불안 때문이라고 본다.

*지정학: 인문지리학의 원리로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학문

미국과 주요 산유국의 갈등

이 상황은 미국과 주요 산유국인 이란, 카타르의 갈등이 주효했다. 당장 공급 축소가 나타난 건 아니지만, 산유국들의 정치 상황이 불안하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석유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유가에 반영된 것이다. (물론 미국은 이란, 카타르와의 갈등으로 줄어들 석유와 가스의 생산량만큼 추가 생산할 여력이 충분하다.)

경제제재 대상: 이란과 카타르

이란의 경우, 탄도 미사일 개발 중단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내전 상태인 시리아의 정부군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곧 미국의 이란산 석유에 대한 무역 제재가 시작될 예정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몇몇 나라는 이미 이란산 석유 수입을 대폭 줄이고 미국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카타르의 경우, 미국과 적대국가인 터키와 이란에 대한 우회 지원 창구로서의 의혹 때문에 이란에 앞서 경제 제재를 받았다. 카타르는 자원 부국이지만 경제가 전적으로 천연가스(매장량 세계 1위)와 석유(매장량 세계 12위)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길이 막힐 경우에 별다른 대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전: 원래도 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산유국 간의 정치적 갈등이 급격한 유가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원래도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유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두 국가는 오랜 동맹이었고 트럼프 사위와 사우디 왕세자가 개인적으로도 친한 사이라, 공동의 목표인 ‘유가상승 실현’에 쿵짝이 잘 맞았다.

미국은 셰일오일 때문이었다. 자국 민영회사들의 셰일오일 시추 기술력으로 주요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셰일오일로 돈도 많이 버는데, 마침 셰일오일 생산지역이 트럼프 지지율도 높은 지역이라 여러모로 트럼프 정부의 기세가 등등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를 계획하면서 유가를 배럴당 80~100달러로 올리고 싶어 했다.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은 두 국가 모두 유가를 다시 떨어뜨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한다.

미국의 태세 전환

미국은 고유가가 경제와 외교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경제성장 저해 우려다. 유가가 높아지면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생산 비용이 올라가면서 물가가 높아져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는, 중동 국가에 대한 영향력 하락이다. 외교적으로 대립 중인 러시아와 이란 등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량을 제재한다고 해도 가격이 높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안 그래도 이란은 “이 정도 가격이면, 원래 팔던 것의 절반만 팔아도 되겠다”라며 미국을 약 올리고 있다.

사우디는 왜?

사우디도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낮추는 데 기여하기로 했다. 원래 사우디가 속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들은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석유 증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랬던 사우디가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은 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1,070만 배럴에서 1,200만 배럴까지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정도면 미국의 경제 제재로 감소할 이란의 석유 수출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카슈끄지 암살 파문: 사우디 왕족을 공공연하게 비난해왔던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일이다.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고유가에 대처하는 한국

한국 정부는 “배럴당 80불을 넘은 유가가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서민에 압박을 줄 수 있어 유류세 인하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린다”라고 발표했다. 유류세의 경우 경기 조절이나 가격 안정 등에 필요한 경우, 기본세율 30%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약 10개월간 10%를 인하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 조치로,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게다가 2008년에는 국제유가가 20~30달러까지 꾸준히 떨어져 유류세를 다시 올렸을 때도 타격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 유류세 인하 조치 이후에도 고유가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류세가 다시 인상되었을 때 그 충격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생산량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지 않고 연간 단위로 측정되는 석유의 성격상, 연말까지 미국과 사우디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잠정 합의한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