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할 자가 없어진 디즈니

히어로 컬렉션을 위한 빅딜(BIG DEAL)

디즈니가 폭스의 영화·TV사업 부문을 약 80조 원($713억)을 들여 인수한다. 컴캐스트라는 대형 통신사가 중간에 폭스 인수에 뛰어들었으나, 디즈니가 단번에 엄청난 금액을 부름으로써 가볍게 누르고 승기를 잡았다. 이로써 디즈니는 어벤져스 히어로에 이어 엑스맨 판권까지 모두 가져오게 되었다. 유니버셜이 가진 헐크 판권의 50%는 아직 회수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디즈니 사업부문 중 하나인 마블 스튜디오는 원래 1930년대에 시작한 ‘마블 코믹스’라는 만화책 회사였다. 스파이더맨, 헐크 등의 캐릭터 판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2000년 전후로 경영위기를 겪자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하나씩 떼어 팔기 시작했는데 그때 엑스맨은 21세기 폭스에, 헐크는 유니버셜에 매각했었다. 이를 보다 못한 디즈니가 2006년에 남은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구매했고, 인수한 마블 스튜디오를 통해 어벤져스 등을 제작해 왔다. 그리고 이번 빅딜로 디즈니는 폭스의 엑스맨, 데드풀 판권까지 가져오면서 마블 히어로 컬렉션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빅딜의 진짜 이유

디즈니는 단지 돈이 될만한 캐릭터를 모으고 싶었던 걸까? 80조 원을 들이면서까지? 사실 이 빅딜의 원인 제공자는 엑스맨도 데드풀도 아닌 넷플릭스다. 올 상반기 들어 넷플릭스의 주가가 75% 이상 급등했고, 2분기 말에는 시가총액 1,520억 달러(163조 원)를 기록하면서 디즈니를 넘어섰다. 전례 없던 상황에 전 세계 언론은 디즈니 왕국이 끝났다는 기사를 연이어 쏟아냈다.

넷플릭스의 위협

초기 넷플릭스(1997년)는 DVD와 비디오를 우편배달하는 별 볼 일 없는 스타트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정기적인 구독료를 받으면서 다운로드 없이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했는데, 이 소비가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하면서 현재는 5,700만 유료 회원을 거느린 업계의 원톱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타사의 콘텐츠를 모아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보면 넷플릭스를 플랫폼 회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명실공히 성공한 콘텐츠 제작사이기도 하다. 자체 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로 에미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마르코 폴로> 시리즈 제작에 1천억 원을 쏟아붓기도 하는 과감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자신들의 최종 목표가 “세계 최고의 콘텐츠 제작사”라고 말하는 패기까지. 그렇게 거대한 플랫폼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위협적인 경쟁사가 된 넷플릭스를 보면서 디즈니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디즈니의 속마음

일명 ‘디즈니플릭스(가제)’라고 불리는 디즈니의 종합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가 2019년에 론칭될 예정이다. 정확하게 넷플릭스를 겨냥한 디즈니의 정면 승부인 셈이다. 넷플릭스를 보고 ‘디즈니플릭스’를 준비하는 디즈니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충분한 사업성, 둘째는 시장 주도권 탈환에 대한 자신감이다.

디즈니의 독자 플랫폼 구축

디즈니는 이 사업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본다. 광고주들은 가처분소득(=당장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높은 고객층에게 광고를 노출하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광고를 보지 않는 데에 돈을 내고 있다. 넷플릭스가 인기를 끄는 것도, 유튜브가 ‘레드’라는 유료 서비스로 광고 없는 영상 재생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광고에 대한 높은 피로도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만 소비하는 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소비자가 매달 구독료를 지불하면서도 ‘디즈니플릭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다.

또, 넷플릭스의 성공 사례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에 따라 플랫폼을 옮겨 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플랫폼 사업이 결국 콘텐츠 싸움이라면, 세계적인 콘텐츠 제작사인 디즈니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앞으로 5~6년 이내에 넷플릭스에서 디즈니 콘텐츠들을 모두 빼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언맨이나 신데렐라가 보고 싶다면, ‘디즈니플릭스’로만 오라는 얘기다. 스타워즈에 마블 캐릭터, 게다가 스포츠 중계 채널인 ESPN까지. 거대 공룡 기업의 시장 잠식 우려에도 불구하고 폭스 인수를 비롯한 디즈니플릭스 론칭 준비는 순항 중이다.

운도 좋았던 디즈니

디즈니플릭스 콘텐츠를 위한 디즈니의 폭스 인수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컸다. 미국은 예전부터 당에 따라 선호하는 기업 형태가 달랐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은 디즈니, 폭스와 같은 거대 미디어 기업을, 민주당은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을 선호한다.

미국의 기업 인수합병은 최대 2년까지 걸리는데 그 이유는 정부의 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즈니의 경우 트럼프가 망설이지 않고 도장을 쾅 찍어줬다. 함께 뭉쳐서 규모의 경제(생산규모 확대에 따른 수익 향상)로 실리콘밸리와 한번 붙어보자는 의도다. 아마존과 구글이 눈엣가시였던 트럼프 입장에서는 디즈니의 이런 행보가 어지간히도 반가웠을 거다.

앞으로의 전망

트럼프의 지지까지 받은 디즈니는 21세기 폭스를 업고 훨훨 날 전망이다. 넷플릭스의 주가가 지난 5년 동안 500% 성장한 것은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인데, 몇 안 되는 넷플릭스의 경쟁사인 HULU의 지분 60%가 폭스의 소유라는 것과 그 폭스가 곧 디즈니에 흡수될 것이라는 사실은 넷플릭스와 투자자들에게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아이언맨, 어벤져스, 엑스맨 등 두터운 팬층을 가진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효자 상품이었던 것도 감안한다면 이번 디즈니의 빅딜은 미디어 업계 판도를 다시 한번 뒤집을 한 수가 될 수 있다. 당장 하반기에도 앤트맨과 와스프, 스타워즈 시리즈 라인업에 2019년에는 디즈니 캐릭터 실사화 영화까지. 이 정도면 미디어 업계의 어벤져스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