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평범했던 소년은 어떻게 황제가 되었나

군주, 왕을 뜻하는 단어 ‘차르’. 그 자체로 러시아 황제를 의미하기도 하며 한편으로 푸틴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러시아 정계는 인맥 정치와 부정부패로 유명하다. 그러나 푸틴의 출신은 정치 명문가나 재벌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후견은 고사하고 오히려 거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하는 푸틴은 어떻게 현대판 황제가 됐을까?

1. 시작

푸틴은 세계 2차대전 징집병이었던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님 밑에서 자랐다. 괴롭힘에 노출되어 있던 어린시절부터 유도와 레슬링 등 무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명문 법대를 졸업한 후에는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이었던 KGB에서 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KGB에서 동독으로 파견돼 임무를 수행하는 5년여 간 국내외 정세는 크게 변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이후 푸틴이 있던 독일 드레스덴 사무소가 하루가 멀다 하고 폭도들의 위협을 받았지만 소련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가 줄어들고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위한 개혁 정책때문에 사회주의 자체가 붕괴되면서 국제적 위세가 크게 꺾였기 때문이다.

2. 당시 상황

소련의 개혁 정책 ‘페레스트로이카’는 재건, 재편이라는 뜻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직후 실시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분야에서 기존 사회주의의 병폐를 해결하고 더 강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었다. 복수정당제 등 정치체제를 민주화하고 개인에게 다양한 생산수단을 허용했으며, 핵군축 및 동서의 긴장완화 노선을 펼쳤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시행하면서 출판 검열을 자유화하고 관리들의 부정부패나 사회의 부조리, 정책의 과오 등을 공개 보도했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인정함과 동시에 발생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사회 전반에 쌓일 대로 쌓인 불만들이 글라스노스트로 분출되면서 소련은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져 갔다.

3. 준비

결국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소련은 현재의 연방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공식화했다. 이후 독립연합국(CIS)이라는 연대를 설립했는데, 이 체제가 소련과 동일한 지위를 가질 거라던 소련의 기대와는 달리 우크라이나, 발트 3국 등 회원국 다수의 이탈로 국제정세에서 그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9년 동안 푸틴은 시장 보좌관으로 시작해 대통령 재산관리부,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KGB의 후신인 연방정보국(FSB) 수장을 지냈다. 인맥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의지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마침내 1999년, 러시아 총리를 거쳐 대통령 대행까지 수행하게 된다.

4. 당선

푸틴이 총리로 재직할 당시, 러시아와 체첸의 무력충돌에서 체첸 반군을 강경진압했고 이 사건으로 푸틴은 정치적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리게 된다. (체첸은 러시아연방에 속한 자치국으로, 오랜 기간 독립을 시도해 왔다) 비슷한 시기, 최초 직선제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부정부패와 정책 실패로 감옥행이 점점 확실해지면서 집권 말년을 불안에 떨며 보내고 있었다.

*체첸이 산유지역이라는 점과 푸틴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준 분쟁으로, 분쟁을 거듭할 수록 러시아는 더욱 강하게 체첸을 쥐고 있다.

결국 권력 통제력을 잃은 옐친은 집권 기간이 끝나기 전, 푸틴에게 대통령 대행 자리를 맡기며 *여생을 의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2000년 푸틴은 러시아의 두 번째 직선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중간에 헌법에 걸려 잠시 총리직으로 내려왔던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통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실제로 옐친은 푸틴 대통령 당선 이후 관련 혐의에서 형사적·행정적 수사에 대한 면책권을 얻었다

5. 스트롱맨의 탄생

현대판 차르이자 스트롱맨 푸틴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자신을 잠시 총리직에 내려가게 했던 헌법까지 고쳐버렸다. 이미 2선인 자신의 임기를 백지화하여(헌법은 3선 금지 내용을 담고 있었음) 곧 다가오는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이다. 이로써 앞으로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당선된다고 가정했을 때, 푸틴에게는 84세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는 스탈린의 30년 집권을 능가하는 최장기 기록(36년)이 될 수도 있다.

강한 러시아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푸틴의 정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푸틴의 집권 기간과 맞물려 크게 성장한 경제를 경험했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을 대체할 만한 정치 인사를 찾지 못했다. 앞으로 대선이 2차례나 더 있음에도 모두가 이번 개헌이 푸틴의 장기집권 길이 열린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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