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합의와 잃어버린 20년

플라자합의 직후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이루어진 플라자 합의. 미국과 일본이 엔화 가치 상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인위적 환율 조작에 합의한 사건으로, 이 합의 때문에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되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일본의 재무부장관은 플라자 합의 직후 나오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미국이 드디어 일본에 항복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 국가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맥락에서 엔화가치 절상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조르기가 당시 일본 재무장관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일본의 재무부장관은 이 인터뷰는 잘못한 인터뷰였다고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엔고 누리기

플라자합의 2년 후에는 240엔으로 1달러를 살 수 있었던 수준에서, 240엔으로 2달러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크게 올랐습니다. 일본은 한동안 이 엔고(엔화의 가치가 높은 상태) 를 기쁘게 누렸습니다.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높으니 일본 사람들은 미국의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고, 해외여행도 활발하여 당시 전세계에서는 지금의 중국인만큼이나 일본인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어느 비행기를 타도 일본어 자막이 있는 것이 참 신기했는데, 이렇게 갖춰진 게 그 시절의 여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의 1차 재정정책

하지만 엔화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일본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이 해외 수입품의 가격에 비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국내생산품이 경쟁력을 잃고 경제가 침체될 것을 우려한 BOJ(Bank Of Japan: 일본중앙은행) 는 금리를 대폭 낮춰 엔화를 시중에 풀기 시작합니다. 금리를 낮추면, 사람들은 대출은 많이 하게 되고 저축은 줄게 되어 시중에 돈이 많아지게 되는데,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2차 재정정책

하지만 모든 경제가 이론대로 돌아가지는 않듯이, 엔화가 시중에 많이 풀림으로써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경제의 거품을 우려한 BOJ는 금리를 다시 높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내야 할 이자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 호황기에 대출을 받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를 했던 사람과 기업들은 내야 할 이자는 늘어나고 원금은 그대로인데,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금융 상품과 부동산의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를 떠안게 됩니다. 따라서 기업 등은 돈을 갚을 능력을 상실하고, 은행은 돈을 빌려 주고도 회수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부실채권) 게다가 금리를 높인 것에 이어 BOJ가 대출총량규제를 실시하면서 이미 금전적 타격을 크게 받은 대기업들의 추가 대출도 막히게 되는데, 이런 연타 공격을 받은 대기업들은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도산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플라자합의

혹자는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는 플라자합의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발단은 플라자합의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의 2차례에 걸친 재정정책의 실패가 직접적으로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명 출구전략, 경기침체기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시행한 각종 완화정책을 경제에 부작용을 남기지 않으면서 거두어들이는 일은 그 시행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2차 재정정책이 출구전략의 역할을 했지만, 그 시기와 기타 통제하지 못한 변수로 실패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