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의 재현?

문제의 발단

올 초 한미FTA 재협상 중 미국 무역대표부(FTA 재협상 파트너)가 보도 자료를 냈습니다.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환율이라는 단어와 합의(양해각서)라는 단어의 사용이 과거 미-일 간 체결된 플라자 합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보도 자료 이후 미국 무역대표부의 대표 로버트가 “철강과 외환, FTA 세 분야에서 타결된 한국과의 협상은 역사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 이라고 말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플라자 합의란?

1985년 9월,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의 각 재무장관이 한 가지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바로 ‘엔화의 가치 높이기(=평가절상=가격 높이기). 사실 그 자리는, 미국이 일본과 담판을 짓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은 미국을 거들 뿐이었죠. 그렇게 회유와 압박을 통해 엔/달러 환율(엔화와 달러의 교환 비율)의 인위적 조정에 합의한 이 사건을, 장소 이름을 따서 ‘플라자 합의’라고 부릅니다.

플라자 합의의 배경

현재 미국이 대중 무역(중국과의 무역)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무역적자에서 대중 무역 적자 비중 60% 이상), 당시에는 대일 무역(일본과의 무역) 적자 비중이 전체의 40%를 차지했습니다. 무려 한화 50조가 넘는 금액의 적자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대일 무역 적자뿐이었다면, 미국이 플라자합의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플라자 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환율주권을 고려했을 때,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당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강달러 기조(달러의 가격이 비싼 상태)로 인한 무역적자와 정부의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면서 불어난 재정적자(→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당시 돈 나갈 때는 많고, 돈 들어올 곳은 적었던 미국의 돌파구가 바로 대일무역 적자를 우선적으로 줄일 수 있는 플라자 합의였습니다.

플라자 합의 이후

플라자 합의 전, 미국의 1달러로 240엔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엔화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2년 후에는 1달러로 고작 120엔밖에 사지 못할 정도로 엔화가 비싸졌습니다. 비싸진 엔화와 일본의 재정정책이 맞물려 심각한 경기 침체(=잃어버린 20년)가 발생했는데, 이 때문에 플라자 합의가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기도 합니다.

제 2의 플라자 합의 대상국?

미국 무역대표부의 발언으로 한국이 제 2의 플라자 합의 대상국이 되는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미국 무역대표부는 FTA 협상을 위한 파트너일 뿐, 환율 협상 파트너는 미국 재무부입니다. 또, 환율 협상의 경우도 화폐의 가치조정이 아닌, 외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거래 내역 규모를 공개하는 정도일 뿐이어서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엉뚱하게 내뱉은 이 말은 성과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한국 기획재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의 발언에 항의하자, 백악관에서는 “Separate track”이라는 말로 선을 그은 것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