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마무리하며

첫 직장을 마무리하며

2022년 6월, 내 커리어의 첫 챕터가 마무리됐다. 마지막 장을 쓰고 나니, 6년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온전히 그 조직에 융화되어 브랜드에 온 애정을 쏟은 시간이었다. 함께한 시간만큼 이별의 아쉬움은 크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콘텐츠 마케터로서 내가 사랑하는 상품을 다른 이에게 소개했고, 퍼포먼스 마케터로서 더 많은 고객을 찾아 실제 매출에 기여했고, 브랜드 마케터로서 신제품 브랜딩부터 리브랜딩까지 수행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고민과 경험의 시간은 행복했지만 치열했고, 치열했던 만큼 결과는 짜릿했다.

첫 입사, 사회인으로서 시작

학부 마지막 학기가 끝날 즈음 받은 합격소식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주변의 축하 덕분에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곧 사회인이 된다는 것을. 게다가 면접을 본 회사는 A, B 2곳, 그 중 B사는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고, A사를 최종합격 한 상황이었다.

A사 신입공채교육 과정과 B사의 최종면접일자가 겹쳤는데, 조직문화가 비교적 유연해 보였던 A사에 입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리고 입사교육에서 마음이 맞는 동기들을 만나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았다. 더 이상 모두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종종 안부를 묻고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첫 출근, 반전 신입

입사교육을 수석으로 마쳐 신입사원 대표로 사령장을 받았다. 같은 날, 발령받은 팀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미 수석입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이번 신입은 엄청 똑똑하고 일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으셨으나, 그 기대에 의문(?)이 생기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상사는 회사 내에서도 말로는 당할 자가 없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또, 일을 만들어 내는 마법의 문장인 ‘일단 빨리 해보자’라는 말로 윗분들의 총애와 아랫사람들의 원망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복병을 만났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
상사: 이거 왜 아직도 안된 거야? 이거 왜 이렇게 됐어? (질책-ATTACK!)
나: 그게 안된 이유는 ~입니다. 이거 먼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해맑-DAMAGE 0!)
-

상사의 어떤 공격에도 데미지를 입지 않는 이상한(?) 신입이 된 덕분에, 사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에게 의도치 않은 사이다를 선물하면서 사내 네트워크가 빠르게 탄탄해졌다. 또, 상사가 일을 많이 시켜 준 덕분에 짧은 시간 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는 최연소 파트장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여러모로 감사한 분이다.

첫 슬럼프, 이것이 바로 직장인의 현타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신입 시절,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몰아치는 일을 소화해야 했다. 그때도 일 욕심만큼은 1등이었던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업무를 했다. 야근은 기본으로, 시간상 오늘 퇴근이냐 내일 퇴근이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렇게 훌쩍 2년이 지나니 3년차에 슬럼프가 왔다.

그 전에도 자잘하게 슬럼프라고 느낄 만한 순간은 있었으나, 3년차에 쓰나미처럼 덮친 슬럼프는 그 동안의 것과는 그 깊이가 달랐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 퇴사 고민을 꽤 오랫동안 했다. 결론은 “아직 이곳에서 더 배울 것이 있다” 였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첫 승진, 해외봉사 중 들은 소식

슬럼프를 이겨내고, 그룹에서 발족한 글로벌 봉사단 1기에 선발됐다. 생애 첫 베트남을 봉사단으로 방문했다. 현지 유치원에서 벽화, 놀이터 조성 등 환경미화활동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간 마술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작별인사 시간이 오자 그새 정이 들었는지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봉사기간 중에 인사발령 소식을 들었다. 승진이었다.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결과를 듣고 나니 가슴이 벅찼다. 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다. 좋은 소식과 선물을 전달할 생각에 매우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첫 사례, 최연소 파트장 그리고 TF리더

내가 속했던 마케팅파트는 소도 같은 곳이었다. 사내 마케팅 전문 인력이 매우 적어 인력난에 시달리면서도, 독립성이 매우 강해 자율성 또한 높았던 곳이었다. 덕분에 다양한 마케팅 트렌드를 공부하고 적용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만 6년이 되던 해에 본부 내 모든 마케팅업무를 파악하고 경험함은 물론 프로젝트 리딩 역량까지 갖췄다.

착실한 노력이 운과 닿아 파트장 승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최연소 파트장이었던 덕분에 축하와 시기를 동시에 받긴 했지만 파트원들의 서포트 덕에 잘 운영됐고, 역시 최연소로 TF리딩까지 하게 됐다.

동료=동력

노력과 열정이 성과로 이어졌고, 감사하게도 마케팅 커리어에 정말 유리한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건 단언컨대 동료였다. 내가 혼자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들, 열정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리딩한들 함께해 주는 동료가 없었다면 그 어떤 일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동료에게 일을 맡기고 나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믿고 맡길만한 ‘동료’가 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내게 있어 든든한 동료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동력 중 하나다.

지금이 타이밍이었던 이유

그 동안 주변에서는 내게 종종 물었다. 왜 이직을 하지 않냐고. 답은 한결 같았다. 아직 이 곳에서 배우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스스로 성장 속도가 둔화된다고 느낄 때가 이직을 고려할 시점이었다. 이는 슬럼프와 분명히 구분됐다.

마케팅은 내 직무인 동시에 관심사다. 그래서 더욱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새 도전을 위해, 긴 고민 끝에 첫 챕터를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성장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진 지금이 커리어의 두 번째 챕터를 펼칠 타이밍이었다.

첫 직장에서 동료와 멘토로부터 얻은 배움을 바탕으로, 새 직장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될 수 있게, 회사와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잘’해보려 한다.

<저작권자 © MarI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