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좋았던 시절일까, 좋아 보였던 시절일까

종종 보이는 이 단어, 무슨 뜻이지?

‘21세기 벨 에포크’, ‘코로나 이후 맞게 될 벨 에포크 시대’ 등 코로나19 관련 경제 기사나 칼럼을 보다 보면 ‘벨 에포크’라는 단어를 종종 접하게 된다. 주로 경기회복을 전망하거나 전성기를 표현할 때 언급하는 단어인데,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뜻을 가진 실존했던 시대의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 벨 에포크 시대와 닮은 점이 있어 비유하는 건 아니다. ‘좋은 시절’이라는 표면적인 의미만 가져다 사용할 뿐이다.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과 산업 덕에 삶이 풍족해지고, 그만큼 유흥과 오락도 넘쳤던 ‘좋은 시절’ 벨 에포크와 경기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노리는 지금의 ‘좋은 시절’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는 무엇일까?

벨 에포크는 전염병과 전쟁이 잠시 멈췄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유럽이 잠시 누린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를 의미한다. 정확하게 연도가 나뉘지는 않지만 1871년 *보불 전쟁이 끝난 시점부터 세계 1차 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를 벨 에포크 시대라 칭하기도 한다.

*보불 전쟁: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이에 반대하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발생한 전쟁

벨 에포크 앞뒤로 발생한 일들이 매우 참혹했기 때문에 비교적 더 좋은 시절로 보여진 것도 있다. ▲이전에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던 흑사병부터 몇 백 년에 걸친 콜레라의 유행,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의 각종 전쟁들. ▲이후에는 세계 1,2차 대전과 스페인 독감의 유행, 대공황까지. 그래서 ‘벨 에포크’ 말 자체에는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도 담겨있다.

명과 암1. 밝음

벨 에포크 당시,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미래 전망이 사회 전체에 팽배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나폴레옹 시대에 말을 타고 전쟁을 했는데 그 손주는 자동차를 타고 전화를 하며 심지어 비행기까지 탔다. 한 세대가 채 지나가기도 전, 철도가 깔리고 마차 대신 차가 다니며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는 등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한 시대였다.

우리에게 캉캉 춤으로 익숙한 물랭루즈, 최초의 고급 레스토랑인 맥심 레스토랑, 파리 만국박람회와 에펠탑까지 모두 벨 에포크 시대의 산물이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인상파가 대두된 시기기도 하다. 1870년대까지 나폴레옹은 파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며 기존의 오래된 판자촌과 건물 등을 밀어내고 새로운 건물들을 세웠는데, 그 때문에 벨 에포크 시기가 더 화려하게 빛날 수 있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명과 암2. 어두움

하지만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 뒤에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있었다. 이는 에드가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에 숨겨진 아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이 많은 부르주아 남성들은 문화생활을 즐겼고, 문화생활로 인기 있던 곳 중 하나가 오페라하우스였다. 공연이 끝나면 남성들은 백스테이지로 모였다. 마음에 드는 무용수와 그날 밤을 같이 보내기 위해서다. 당시 한 무용수는 그곳을 ‘고급 창녀를 길러내는 곳’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누구와 밤을 보내고 지원을 받느냐에 따라 무대 위 주인공이 달라졌다. 이때 ‘스폰서’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무용수들은 주로 빈곤한 가정 출신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낮은 성공 확률에 어린 시절을 걸고 불구가 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당시 가난하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성공하면 일반 교사 월급의 30배에 달하는 돈을 쥘 수 있었다.

마치며

이처럼 벨 에포크 시대는 돈 있는 부자들만의 ‘좋은 시절’이기도 했다. 제국주의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로, 이주 노동자나 식민 지배를 받는 국가들의 고통은 심화되었고, 지배 국가 내부에서도 노동자 계급에 대한 심각한 노동착취가 이루어졌다. 이때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빈부격차 해소를 외치는 사회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좋은 시절’에 ‘좋은 시절’을 끝내려 하는 세력이 성장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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